meta name="naver-site-verification" content="8808aec597ae471cbca1362de49a744190f8f231"/

160526_이글루스 애드센스


작가의 벽(Writer’s Block)을 넘는 법 by YangGoon



작가의 벽

(Writer’s Block: 글을 전혀 쓰지 못하게 되는 증상)



1920년, 열여섯 살 난 그레이엄 그린은 

“104주 동안의 단조로움, 부끄러움, 정신적 고통” 끝에 

자신이 다니던 프렙스쿨인 버크햄스테드를 떠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학교의 교장이었기에 

그는 부모님 앞으로 된 자퇴사유서를 남기고 학교로부터 도망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되었습니다. 

그 탈출은 가족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이들은 그에게 6개월간의 심리 치료를 받게 했습니다.


이는 그린의 남은 인생을 극적으로 바꿉니다. 

그는 지긋지긋했던 학교로부터 해방돼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또한 그의 작가로서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습관을 몸에 익혔습니다. 

그것은 그린이 자신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다 

생산적인 방향으로 보낼 수 있게 만든 꿈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입니다.



영국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그레이엄 그린



그린이 얼마나 많은 글을 남겼는지 아는 이라면 

그도 작가의 벽(writer’s block)으로 

고생한 적이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겁니다. 

그러나 그 역시 50대에, 스스로 “봉쇄(blockage)”라고 부른,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없거나 심지어 

시작도 할 수 없는 그런 슬럼프를 겪었습니다. 

그린은 꿈 일기가 자신을 구해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는 꿈 일기가 매우 특별한 형태의 글쓰기라고 믿었습니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꿈을 볼 수 없습니다. 

또한 누구도 명예훼손으로 그 내용을 고발할 수 없습니다. 

누구도 그 내용이 사실인지 따지지 않으며, 

비현실적인 사건 전개를 걸고 넘어지지도 않습니다. 

그린의 꿈 일기를 모은 『나만의 세계(A World of My Own)』의 

서문에서 그린의 오랜 연인이었던 이본 클로에타는 

그린이 친구에게 했던 말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꿈 전체를 기억할 수 있다면 

그는 어떤 다른 세상의 환상으로부터 

만들어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 

그는 자신에게 박힌 의식의 바깥에서 자신을 찾는다."


의식이 만드는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그린은 다시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작가의 벽(Writer’s block)


작가의 벽은 아마 글쓰기가 시작된 이래 존재했겠지만, 

그 단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1940년대 정신과 의사 에드문드 버글러였습니다. 

버글러는 약 이십년 동안 “생산성의 신경성 억제”로 

고생하는 작가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는 왜 그들이 창작을 할 수 없는지,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이를 치료할 수 있는지를 찾으려 했습니다. 

이런 문제를 겪는 작가들과의 몇 번의 인터뷰 및 

수 년간의 연구 끝에 그는 당시 가장 인기있던 

이 문제에 대한 해설이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벽에 부딪힌 작가들은 당시의 설명처럼 영감을 다 써버리고 

“스스로를 다 소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월세를 내고 나면 더 이상 글이 써지지 않는 현상을 일컫는 

“집주인(landlord)” 이론에서처럼 

외부의 동기가 사라졌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재능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고, 

그저 지루해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버글러의 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는 프로이드 학파로부터 정신분석을 배웠고, 

그는 이를 바탕으로 이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프로이드가 1939년 만든 저널인 

《아메리칸 이마고(American Imago)》에 

1950년 실린 「작가의 벽은 실재하는가?」라는 글에서 

그는 작가는 정신분석가와 같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자신 내부의 문제를 

글쓰기라는 방법으로 승화(sublimation)시키려 

노력하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즉 벽에 부딪힌 작가는 실제로 심리적으로 벽에 부딪힌 것이며, 

따라서 이 벽을 없애기 위해서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심리적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이 벽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방법도 통하기만 한다면 괜찮겠지요. 

문제는 이 논리가 그저 좌절스러울 정도로 모호하며 

수많은 다른 사실들을 가정한다는 것이지요. 

작가에게 글쓰기가 승화의 과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 순전히 

심리적으로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라는 증거는요? 

무엇보다도, 심리적으로 벽에 부딪혔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요?



싱어와 배리오스의 실험: ‘작가의 벽’의 네 종류


그러나 버글러의 결론은 정답에서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7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예일대학의 심리학자 

제롬 싱어와 마이클 배리오스는 작가의 벽이 어떤 것인지를 

더욱 실험적인 관점에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소설과 비소설, 시와 산문, 

연극과 영화 시나리오 등을 쓰는 다양한 작가들을 뽑았습니다. 

그중에는 작가의 벽에 부딪힌 이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이도 있었습니다.


일련의 기준을 만족하는 이만이 

작가의 벽에 부딪힌 이로 분류되었습니다. 

곧, 현재 자신의 작업을 전혀 진전시키지 못한다는 

객관적인 증거를 내어야 했으며 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제대로 증언해야 했습니다. 

이런 증상이 3개월 이상 지속된 이들만이 기준을 통과했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한 달 동안 이들의 변화를 추적했습니다. 

그들을 인터뷰 하면서 거의 60개의 다른 심리 테스트를 받게 했습니다.

 

그들이 먼저 발견한 것은, 전혀 놀랍지 않게도, 

벽에 부딪힌 작가들은 불행하다는 것입니다. 

자아비판을 포함한 우울증과 불안증이 있었고 

일에 대한 자부심이 줄어들어 있었습니다. 

반복, 자기 의심, 미루기, 완벽주의 등의 강박증을 보였습니다. 

무력감과 함께 ‘고독 회피(aversion to solitude)’ 증상을 보였는데, 

마지막 문제는 글쓰기가 혼자 있는 시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불행한 작가들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불행하지는 않았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이들은 네 종류의 그룹으로 나누었습니다.


● 첫 번째 그룹은 불안과 스트레스를 

가장 큰 요인으로 가진 그룹입니다. 

이들이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글쓰기의 즐거움을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감정적 고통이었습니다.


● 두 번째 그룹은 분노와 짜증으로 

다른 이들에게 자신의 불행을 드러내는 이들이었습니다.


● 세번째 그룹은 모든 일에 무감각해진 이들이었습니다.


● 네 번째 그룹은 그저 슬퍼하는 것을 넘어 

화, 분노, 실망 등의 강한 부정적 감정을 드러내는 이들이었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이러한 차이가 필연적인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곧, 서로 다른 그룹의 작가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글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한편, 모든 벽에 부딪힌 작가들이 

공통으로 겪는 현상도 있었습니다.


● 거의 모든 작가들은 동기의 부족을 느꼈습니다.


● 또한 의욕의 부족과 함께 글쓰기의 

즐거움 역시 충분히 느끼지 못했습니다.


● 창의력도 부족했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벽에 부딪힌 이들이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에 그림을 그리는 능력 또한 

부족했으며 생동감도 부족했습니다. 

또한 긍정적인 몽상에 빠지거나 

실제 꿈을 꾸는 일도 상대적으로 드물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런 동기 및 창의력의 부족이 

각 그룹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 불안이 문제였던 첫 번째 그룹은 

자신의 상상력이 실제로는 크게 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어떤 글도 쓸 만하지 않다는 

그런 과도한 자아비판 때문에 동기를 잃었습니다. 

(이 말이 그들의 상상력에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지만,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기 보다는 

과거의 장면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 사회적으로 적대적인 두 번째 그룹은 

다른 이의 글과 자신의 글을 

비교하기 싫다는 이유로 동기를 잃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남의 비판을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시기의 대상”이 되는 것이 싫다고 말했습니다.) 

이들의 몽상 능력은 대체로 온전했지만, 

이들은 그 능력의 대부분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상상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 무감각이 특징인 세 번째 그룹은 

창의력의 감소가 가장 크게 나타난 그룹입니다. 

그들은 몽상을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자신만의 생각을 떠올리지도 못했고 

자신이 지켜야하는 “규칙”이 너무 빡빡하다고 느꼈습니다. 

이들에게는 사실 동기가 거의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 분노와 실망으로 대표되는 마지막 네 번째 그룹은 

외부의 동기를 찾으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외부의 보상과 관심을 원했고 이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이들이 보다 자아도취적이며 

그들이 가진 나르시시즘이 

그들 작품의 특징이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상상한 이미지들을 밝히지 않았으며 

이를 자신만의 것으로 두려 했습니다.

 


어떻게 빠져나올 것인가


어떤 면에서, 배리오스와 싱어의 발견은 

버글러의 이론을 기억나게 합니다. 

그들은 작가가 벽에 부딪혔을 때 느끼는 

여러 현상들이 일종의 정신과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마치 불행한 작가는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행하며, 

이를 회복하기위해서는 각자의 

감정적 문제를 치료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배리오스와 싱어는 

정신과의사가 아니라 심리학자였으며, 

그들은 작가의 벽을 실험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방법으로 계속 연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그들은 작가가 마음속에 그리는 

이미지의 생생함과 내용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이들은 마음속에 이미지를 그리도록 유도하는 

단순한 치료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배리오스와 싱어는 벽에 부딪힌 작가들에게 

일련의 과정을 통과할 경우 다양한 색깔을 가진 이미지를 

상상할 수 있게 한 실험에 참여할 것을 부탁했습니다.


작가들은 어두침침하고 조용한 방에 앉아 

그들에게 마치 꿈에서 만들어진 듯한 내용을 상상하고 

설명하게 만드는 10개의 지문을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음악 한 소절, 

혹은 자연에서 일어날 수 있는 

특별한 상황을 시각화해야 했습니다. 

그 후, 그들은 자신이 지금 해야하지만 

벽 때문에 막혀있는 일 중 한 가지를 시각화했고, 

이와 관련한 “꿈같은 경험”을 상상했습니다. 

이 치료는 2주간 지속되었습니다.




이 방법은 어느 정도 성공적이었습니다. 

치료에 참가한 작가들의 글쓰기 능력은 향상되었고 

그들 스스로도 자신감과 동기를 얻었습니다. 

이 방법이 모든 이들을 낫게 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창의력이 고갈되었다고 생각한 이들에게도 

자신의 창의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

(그린의 꿈 일기 역시 그린에게 같은 일을 한 것입니다).


여러 작가에게 이 치료는 그들이 느끼는 증상을 완화시켰고, 

치료가 끝난 뒤에도 그 효과는 계속되었습니다. 

적어도 버글러는 부분적으로는 맞았던 것입니다. 

심리적인 벽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그러나 작가의 벽을 이기기 위해 작가는 

자신의 감정적인 삶을 바꾸어야 한다는 버글러의 생각은 틀렸습니다. 

사실 배리오스와 싱어의 실험은 그와는 정반대의 것이었습니다.


즉 창의력과 관련된 부분만을 건드리는 것으로 

벽의 원인으로 보이는 불안을 줄이고 또한 

자신감과 동기를 키울 수 있는 것으로 드러난 것입니다. 

치료가 창의력을 해제했다기 보다는 

창의력 훈련이 일종의 치료처럼 작용한 것입니다. 

어쩌면 위의 실험같은 직접적인 이미지 훈련만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창의적인 일을 배우는 것은 

작가가 벽을 이기는 데 도움을 줄지 모릅니다.



창조는 수많은 실패를 동반하며, 

목표에 이르기 전까지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


펜실베니아 대학 상상력 연구소 과학소장이자 심리학자이며 

『타고난 창조자(Wired to Create)』의 공저자인 

스콧 배리 카우프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작가의 벽을 만난다면 그저 종이에 어떤 아이디어나 지식 등, 

무엇이건 써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겁니다.”


2009년 카우프만은 

『창조적 글쓰기의 심리학』이라는 책의 편집에 참여했습니다. 

그는 그 과정에서 실수를 허용하는 것, 

그리고 창조성은 비선형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작가의 벽을 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나는 작가가 글쓰기 과정에 대한 

신뢰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조성은 비선형성과 그 고유의 연관된 조합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하며, 

자신이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는 

자신이 정확히 어디를 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마 이 말이 작가의 벽에 대한 연구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메시지로 보입니다.

 벽에 부딪힌 작가는 외적, 

그리고 내적 비판에서 잠시 동안이라도 벗어나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글쓰기라면, 

꿈 일기는 다른 이에게 읽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때문에 이에 적합한 도구입니다.


이러한 도피는 작가에게 

불확실성이 주는 편안함을 선사하며, 

그 결과 이들은 비록 그 상상이 우스꽝스럽고, 

무의미하고, 자신이 지금 해야하는 일과 무관한 일이라 하더라도 

이를 상상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린은 한 때 다음과 같은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나는 시 경연대회에 나가 아래 한 줄을 썼다. 

‘아름다움은 죄를 숭고하게 만든다.’ 

뒷자리의 T.S. 엘리엇이 나를 비판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어떻게 죄가 숭고해질 수 있지?’ 

나는 그가 턱수염을 기른 것을 보았다.


현실에서라면 T.S. 엘리엇이 

당신의 시를 비판할 경우 

당신은 자신의 시적 재능을 의심하게 되겠지요. 

그러나 꿈에서는 그 반대 효과를 만들었습니다. 

그 꿈은 그대로 이야기의 소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이야기는, 

우리가 아무리 커다란 벽에 부딪혔더라도 

여전히 새로운 무언가(비록 그것이 작고 바보 같은 일이라도)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출처]

ppss.kr/archives/77846






통계 위젯 (블랙)

58
42
61790